나는 가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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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분명히 고백이다. 하지만 순수한 자기 반성은 아니다. 상당 부분은 변명으로 채워질 것이고 상당 부분은 죄책감을 덜기 위한 비겁한 행동으로 채워진다. 그렇지만 지금 조그마한 반성이 없다면 잘못된 행동이 반복될 수 있다. 또한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평가해야 하는 순간에 급하게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게 하기 위해, 타인과 나를 조금이나마 이해시키기 위해 비겁한 변명을 적어본다.

 

 

나는 학교폭력 가해자다.

중학생 시절, 흔히 왕따라고 불리는 가학 행위가 있었다. 당시 나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다. 관종 경향이 강했던 나는 쉬운 왕따 대상이었다. 그리고 같은 반에는 내성적인 학생 또한 외모 비하 위주의 왕따가 있었다. 나는 나에게 향하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그 학생을 향한 왕따를 했었다. 그리고 분명히 난 그 행위를 즐겼다. 나를 포함한 가해자들은 짐승적인 행동이라고 해야할지 짐승도 하지 않을 행동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학교폭력을 일상처럼 하고 다녔다.

 

정말 심각한 것은 가해자는 쉽게 잊는다는 것이다. 당시 같은 반의 가해자 집단은 물리적 폭력보다는 언어 폭력과 그 학생의 물품에 손을 대는 등의 형태로 괴롭혔다. 하지만 물리적 폭력이 전혀 없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왕따 대상이었을 때의 상처는 기억이 난다. 괴로웠고 눈물 흘렸던 시절. 난 그런 행동을 당했으면서 다른 학생에게 그런 괴롭힘을 가했던 것이다. 그 학생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가해자는 발 뻗고 자고 피해자는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 난 둘 모두를 겪으면서도 당시 피해 학생의 입장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괴롭힘 대상이 되었던 학생을 계속 "학생"이라는 명칭을 쓰고 "친구"라고 쓰지는 않고 있다. 그런건 친구라고 부를 수 없다. 하지만 그 학생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한번은 그 학생의 부모로부터 내가 살던 집에 전화가 온 적이 있다. 학생이 집에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고 하였다. 물론 난 왜 그 학생이 귀가가 늦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불안했다.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써 무시하고 사소한 것처럼 마음 한 구석에 두었지만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불안해 했던 것이다. 당시에도 왕따는 심각한 사회 이슈였다. 다행히 그 학생은 별일 없이 다음날 등교를 하였다. 이 글을 쓰다보니 어쩌면 내가 모를 별일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를 더욱 죄책감에 쌓이게 한 것은 '어떻게 그 학생의 부모는 내가 있는 집에 전화를 하였나?'이다. 가끔 그 학생과 어울리기는 했지만 내 연락처를 알 수 없었다. 휴대폰을 일상적으로 가지고 다니던 시기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그 친구 입장에서는 내가 친구라고 생각했다면 난 그 호의를 이용한 악인이나 마찬가지이다. 가해자 집단에서 난 주축은 아니었다. 그래서 난 그 학생과 친구보다는 멀지만 타인보다는 약간은 가까운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그 포지션에서 가학 행동을 저질렀던 것이다.

 

후회해 봤자 바뀌지 않는 역사이다. 창피한 행동이다. 물론 피해 학생의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눈을 돌렸다. '지금 나도 괴로우니깐 화살을 저쪽으로 돌리는게 편해.' 그렇게 눈을 돌렸던 대가를 근 몇년 사이에 되돌려받고 있다. 그 대가는 크지도 않다. 아주 미미한, 정말 아주 미미한 티끌같은 대가로 돌려받고 있다.

 

어느 배구선수, 어린 시절의 학교폭력

미디어에 학교폭력 이슈가 나올 때 마다 난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금방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올해 2월, 프로 배구선수로부터 학교폭력 이슈가 불거져 나왔다. 피해자의 폭로가 미디어를 탄 것이다. 가해자인 해당 배구선수의 어린 시절은 악독했다. 그리고 그의 반성에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난 그를 비난했지만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그를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나 역시도 제대로 반성한 적이 없었다. 나로부터 피해를 받은 사람이 폭로를 할 때까지 기다리고 그제야 반성하는 것은 진정한 반성이 아니다. 비겁하고 변명일 뿐이며 죄책감을 덜기 위한 행동일지 몰라도, 적어도 저 배구선수와는 다르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직까지 해당 피해학생에게 연락해서 용서를 구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창피하기도 하고, 아직 스스로 제대로 반성하고 있지 않아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평가해야 할 때, 그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나에게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했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렇게 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래본다. 좀 더 용기있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채운 사람이길 바래본다.

 

나는 현장에서 도망간 가해자다

학교폭력은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 가해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가정폭력, 성희롱, 데이트 폭력 등을 했다. '했을 수 있다'라는 말은 스스로를 똑바로 처다보지 못하는 말이다. 뉴스에 나오지 않았고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나 스스로 생각해도 심했다 싶을 가해 행동이 있었다. 그것은 언어적으로 물리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눈물을 흘리게 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당시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에게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받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니깐.

 

이 글을 쓰는 것은 그런 행동을 사전에 막고,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는 것이다. 난 피해자가 되고 싶지도 않다. 그럴려면 가해자가 되지도 않아야 한다. 단순히 누군가를 비난할 자격을 갖추기 위함이 아니라 누구 앞에서도 당당한 내 모습을 기대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가 특별하다. 그래서 나는 평범하다. 평범한 내가 평범하게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행사하려면 타인의 평범한 일상도 존중해줘야 한다. 과거의 나를 반성하며 앞으로의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이 글을 빌어 저에게 피해를 받은 모든 분들에게 잘못을 뉘우칩니다.
반드시 기회가 닿을 때 직접 용서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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